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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크론슈타트 공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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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베틀라 강 연맹과의 전쟁 (700~709) === 서부를 통일한 공국 앞에는 평원 중부의 '''스베틀라 강 연맹'''이 있었다. 연맹은 스베틀라 강 유역의 호족들이 모인 느슨한 연합으로, 서부의 강자로 떠오른 인크론슈타트를 두려워한 호족들이 700년 먼저 공국의 동쪽 변경을 쳤다. 이후 10년 가까이 이어진 전쟁은 처음 몇 해 동안 승패 없이 서로의 변경을 약탈하는 싸움이었다. 전쟁의 흐름을 바꾼 것은 옛 물길이었다. 인터르스키는 703년부터 2년에 걸쳐 반세기 넘게 막혀 있던 옛 물길을 다시 뚫었는데, 705년 봄 되살아난 물길은 대수문의 물을 스베틀라 강 지류로 흘려보내 연맹 서부의 들판을 적셨다. 연맹 서부의 호족들은 반세기 만에 다시 물이 들어오는 것을 반겼다. 그러나 706년 여름 인터르스키는 옛 물길의 수문을 닫았다. 한 해 전 물을 믿고 들판을 넓혔던 연맹 서부는 가뭄과 굶주림에 빠졌고, 서부의 호족들은 하나둘 연맹을 떠나 공작에게 항복했다. 후대의 사가들은 이를 '수문 전쟁의 완성'이라 불렀다. 같은 해 인크론슈타트 주교좌는 대주교좌로 승격되었다. 707년 연맹의 맹주 즈보니미르는 남은 호족들을 모아 반격에 나서 베레스 하구의 부두와 빌베른 상인의 창고를 불태웠다. 인터르스키는 709년 여름 종사단과 농민 징집병을 이끌고 스베틀라 강 중류로 진군했다. 스베틀라 강의 여울목 브로드에서 벌어진 '''브로드 전투'''에서 공국의 기병은 여울을 건너려던 연맹군을 측면에서 무너뜨렸고, 즈보니미르는 강물 속에서 전사했다. 이듬해까지 연맹의 남은 호족들이 모두 항복하면서 평원 중부도 공국의 손에 들어왔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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